세상 이야기

양회동 열사 영결식

여인두 2023. 6. 21. 14:55

 

양회동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일 만에 영결식이 진행됐다.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땡볕 폭염이 사라지고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린다.

사람답게 살고자 했고, 일한댓가를 때이지 않고자 가입한 건설노조가 나라를 말아먹었습니까? 나라를 팔아먹었습니까?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추도사

엄마가 학폭 가해자임을 알게 된 예솔이는 "난 이제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아. 기상 캐스터도 안 할 거야"라고 합니다.
친구를 죽이고도 일말의 가책도 없던 연진이도 자식의 저 말 앞에선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마트를 만들고 길을 닦으며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아빠, 그 멋지던 아빠가 대통령 한마디에 조폭이 되고 공갈 협박범이 되었습니다.

삼촌이라고 불렀던, 큰아빠하며 따랐던 아빠의 친구들이 잡혀가고 아빠까지 구속영장이 떨어졌습니다.
한 가정이 무참히 무너졌고 수천 개의 가정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하도 죽어서 그만 죽자고 만든 게 건설노조입니다.

걸핏하면 임금을 떼먹혀 크레인 위에 올라가고 공사 끝난 아파트 밧줄에 매달리는 그런 짓 그만하고 말로 해결하자고 만든 게 건설노조입니다.
일요일은 새끼들이랑 마트에서 온종일 서서 일하는 마누라랑 고기 한번 구워 먹자고 만든 게 건설노조입니다.

그런데 기어이 아이들과 함께 구워 먹은 쇠고기가 마지막 만찬이 되게 해야 했습니까!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15살짜리 상주가 "우리 아빠가 진짜 범죄자예요?" 묻게 해야 했습니까.

건설노조가 나라를 말아먹었습니까!
화물연대가 나라를 팔아먹었습니까!

일본이 원하면 방사능 오염수라도 퍼먹이겠다면서 제 나라 노동자들에겐 왜 그리 모집니까!
일본이 저지른 어떤 범죄와 패악도 다 용서하고 이해해 주면서 노동자들에겐 왜 그리도 잔인합니까!

유태인 혐오를 부추겨 수백만을 학살했던 히틀러. 끔찍한 인종학살과 여러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세계대전은 나치의 유태인 혐오로 극에 달했습니다.

한 집단에 대한 혐오가 엄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인류는 이제 혐오를 내세워 정치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혐오가 얼마나 나쁘고 어리석은지를 가르치며 범죄시합니다.
그런데 왜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1900년대 이미 실패한 나치의 정치를 합니까!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와 탄압을 기꺼이 불태워 버리고자 했던 양회동 동지 어디쯤 가셨습니까!
쌍둥이 아이들과 아내를 남기고 동지들을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어디까지 가셨습니까!
세상이 너무 어두워 등불이 되려 하셨습니까!
내려치는 칼날 피하지 마라, 겁먹지 마라, 두려워 마라, 거침없이 타오르는 횃불이 되려 하셨습니까!

동지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노가다에겐 정부도 없고 나라도 없던 긴 세월 그렇게 싸워 우린 스스로 조직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정순규의 죽음 위에 아파트가 세워지고, 김태규의 시신 위에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떼로 죽어야 뉴스에 한 줄 나오던 그 숱한 죽음들 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습니다.
전태일을 묻고, 김주익을 묻고, 곽재규를 묻고, 최강서를 묻고 그 피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
 
21세기에도 20세기 전태일처럼 죽어야 했던 양회동을 넘어 우린 또 갈 것입니다.
10년을 싸우는 풍산 동지들이 있고, 4년째 싸우는 대우버스 동지들이 있고, 조합원 2명이 2년을 넘게 싸우는 서면시장 동지들이 있습니다. 힘냅시다.

양회동 동지. 여기서 짓다만 집을 천국에 지어주세요.
추락사도 없고, 끼임사도 없고, 본인 부주의도 없고, 똥띠기(똥떼기, 중간착취)도 없고, 데마찌(일없어 대기)도 없고, 쓰메끼리(유보임금)도 없고, 임금 체불도 없고, 탄압도 없는 그런 집을 지어주세요.

진상조차 알지 못하는 세월호와 이태원의 억울한 영혼들. 신림동 반지하 방에서 장애인 언니와 어린 딸과 물에 잠겨 숨져간 노동자, 전세 사기 피해자들. 그 억울하고 원통한 영혼들을 따뜻이 품을 큰 집을 지어주세요.

사지육신 제자리에 붙은 채로 죽으면 마흔에 죽든, 쉰에 죽든 호상이었던 그 숱한 죽음들이 편안히 깃들 따뜻한 집을 지어주세요.
어떤 탄압에도 꺾이지 않을 건설노조의 깃발을 걸어주세요.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아빠가 지은 햇살 잘 들고 바람 잘 드는 집에서 쌍둥이 아이들과 아내와 따뜻하게 만나 이승에서 못다 한 한을 부디 푸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