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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두의 시시콜콜 418

김종수 목사님 1주기에 부쳐

김종수 그는 내게 또 다른 김현삼이었습니다. 김현삼이 그랬던 것처럼 김종수도 내게 온갖 숙제를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내 인생에 아주 잠시 스쳐간 두 김목사로 인해 나는 비 오는 밤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 김현삼 목사님 당신은 죽동에 핀 꽃으로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으며 민주화 투쟁의 전사였습니다. 김종수 목사님 당신은 역사의 증언자로 차별받는 이들의 든든한 우군이었으며 평화와 통일의 꽃이었습니다. 두 목사님이 죽동교회와 산돌교회로 이어지는 30여년의 세월 속에 40대 김현삼과 60대 김종수는 제게 스승이요 어미였습니다. 김현삼 목사님을 따라 30년을 살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김종수 목사님을 따라 또 30년을 살라고 하니 너무 가혹합니다. 그러나 이 가혹한 형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별이 되신 두 목사님의 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원명선원 앞산의 봉우리가 사라봉이라는 곳이다. 제주에서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10곳을 영주 십경이라고 부르는데 1경이 성산일출이고 2경이 사봉낙조라고 한다. 바로 그 사봉이 사라봉이다. 그런데 사라봉을 넘으면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있다. 4ㆍ3 당시인 1949년 1월 4일과 5일 양일간에 걸쳐 67가구를 모두 불태우고 학살한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육군의 전신이었던 국방경비대에 의해서 벌어진 만행은 주로 중산간마을(제주도 중산간 지대 마을)에 집중되었는데 이곳은 해안가 마을로서는 최대로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런데 스님의 설명을 듣자니 슬픔을 넘어 울화통이 터진다. 당시 1월 4일 오전 마을 근처 지서(파출소)에 돌멩이가 하나 날아들었다. 이미 돌멩이를 던진 사람은 사라졌는데도 지서 경찰들이 지..

삼성 선풍기 SF-1403W

이 선풍기 기억나시나요? 삼성 선풍기 SF-1403W 40년 됐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선풍기보다 더 깨끗하고 작동도 이상없이 잘됩니다. 바람도 지금의 떱떱한 바람이 아니라 40년전 신선한 바람이 불어 오는 것 같습니다. 원명선원 사무장님이 쓰시는 선풍기인데 사무장님의 꼼꼼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물건입니다. 호기심에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너무 오래전 제품이라서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고가의 핸드폰도 수명주기가 2~3년에 불과한데 35년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사무장님께 삼성에 연락해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요?

21코스 종달리

21코스 마지막 종달리에 도착했다. 우비와 우산을 챙겨주신 혜오스님 덕에 호우경보를 뚫고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강적을 만났으니 네번째 사진에 있는 두 사람은 이 장마통에 우산도 우비도 없이 맨몸으로 이 코스를 밟고 있다. 해상특보가 발효돼 우도로 가는 배는 멈춰있고 텅 빈 종달항 대합실은 굳게 닫혀있다. 성산 일출봉까지 가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멀찍이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종달항에서 18~21코스 종주 기념으로 먹는 라면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雨水에 젖어 憂愁에 젖었다.

월정리에서부터 세화, 하도까지의 올레길 20코스는 '우수의 길'이다. 雨水에 젖어 憂愁에 젖었다. 빗소리가 아름답다는 느낌 이해할 것이다. 누가 이 소리와 함께 이 길을 걸을까? 오직 나만의 소소한 행복이다. 한참 들길을 걷다 산딸기 무리를 발견하고 몇 알을 따먹었다. 나머지는 뒤에 올 여행자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놓았다. 이제 21코스의 첫발을 내딛는다. 여행자 센터에 물어보니 세 시간 걸린다고 한다. 기다려라 성산포...

시간에 끌려다니지 말고, 시간을 부리는 생활인이 되라

비가 내린다. 호우주의보까지 떨어졌다. 갈까? 말까? 30분을 뭉그적거리다가 비 오는 날 성산포가 보고 싶어 졌다. 그래 출발하자! 일단 출발하기로 한 이상 가방의 짐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사실 이틀간 너무 무거운 짐을 메고 다니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한 번도 쓰지 않은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녔다. 욕심을 버리니 한결 가벼워졌다. 복장도 간편하게... 어제까지의 내 모습은 부르카를 걸친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반바지에 샌들이다. 우비만 아니면 누가 봐도 동네 건달이다. 201번 시내버스를 타고 금산목까지 1시간 20분을 가야 어제 중단했던 그 자리부터 다시 시작이다. 스님과의 어제저녁 공양은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젊음의 시간이었다. 스님과 공유할 수 있는 시..

가볍게 바람처럼

드디어 숲길을 헤쳐 김녕이 보인다. 내 페북을 보고 목포의 성수후배가 제주 왔는데 같이 점심 먹자고 연락을 했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후배에게 정을 주지 못했는데 과분한 정을 받는다. 18코스와 19코스 완주 뱃지다. 오늘은 19코스가 목표였는데 시간이 남아 20코스 마저 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있지만 욕심을 한번 부려볼란다. 점심 먹고 걸어오면서 읽은 구절 [바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지?" 바람이 대답했다. "가볍게 살면 돼, 나처럼."] 감정의 정거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 그것이 현명한 삶이다. 가볍게 바람처럼...

자기 그릇만큼만 담을 수 있다

북촌에서 김녕까지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앞서는 이 없고 뒤따르는 이 없이 오롯이 혼자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을 걸었다. 혹여 마주치는 이가 있다면 반갑게 인사라도 하련만 그마저도 없다. 산길에 외롭게 메여있는 리본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정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단조로운 산길에서 사색 없이 반복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데 갑자기 육중한 풍차가 길을 막는다. 풍차를 보니 돈키호테가 생각난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대한 적(거인)으로 인식하고 로시난테를 타고 돌진했다지... 이 풍차 15기가 만들어내는 전력은 2만 5천 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30만 메가와트라고 한다. 기후위기시대를 극복할 위력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풍차와 싸우는 이가 또 있다. 기후위기시대에 연간 1..

슬픈 일이 있고 나면 별이 하나 떠오른다

서일봉 둘레길에서 너븐숭이까지의 길은 아픔의 길이다. 제주도 그 어느 길이 아프지 않은 길이 있겠냐마는 이 길을 걷다 보면 그 아픔이 유독 더 깊어진다. 처음 서일봉 둘레길에 들어섰을 때 나무동굴과 해안선 절벽에 감탄하면서 걸었다. 그런데 4ㆍ3길이라는 리본을 보면서 제주도민이 학살을 피해 이 절벽 끝까지 몰렸을 생각에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걸어 해안동굴을 맞이하게 됐다. 일제가 패망 직전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위해 자살특공대(의 대부분은 강재로 동원된 조선의 청년들이었다.)인 인간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파놓았다는 해안동굴을 제주에서도 마주하다니... 목포 고하도에도 이러한 동굴이 20여 개가 있기에 그 아픈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길이 아픔의 길인 이유는 처음의 환희가 갑작스레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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