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94

분수

새벽같이 텃밭으로 향해 몇 가지 채소들을 심었다. 중간에 텃밭 위 주택에서 한달살이를 하시는 분과 서복현 이장님을 만나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서 이장님과의 화재는 당연히 가수 박지현이었다. 낭중지추라고 박지현의 소싯적 노래를 들어봤는데 첫 소절에 뿅 가버렸다는... 박지현 덕분에 방송출연도 하시고 잠깐 출연했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단다. 자욱한 가을 안갯속에서 혼자 밭을 일구는 농부의 모습, 그러나 현실은 서튼 텃밭지기의 호미질이 더뎌 세 시간 동안 끙끙대며 일을 마무리했다. 다들 자기 자리가 있는것 같다. 그것을 분수라 하는데 나는 내 분수에 맞는 자리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가끔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의 주변은 필경 불행해진다. 그런데 작..

우리집 이야기 2024.10.13

밭갈이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 밭을 갈았다. 이미 때가 지난 작물들은 뽑아 버리고, 돌밭이라 삽이 안 들어가 호미로 일일이 돌을 파내고 흙을 다지며 마무리로 퇴비까지... 혼자 하려니 6시에 시작해 9시에 끝 밭을 갈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세상도 밭을 갈듯 한 번씩 뒤집어엎을 수 있으면 어떨까?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논과 밭은 갈아엎어야 수확이 좋듯 세상도 한 번씩 갈아엎어야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논과 밭은 갈아엎으려고 하면서 세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경험 탓일까? 한번 갈아엎어봤는데 윗대가리만 바꿨지 자신들 삶에는 아무 영향이 없었던... 그래도 갈아엎은 밭과 그렇지 않은 밭이 차이가 나듯 세상사도 한번씩 갈아엎어야 한다. 밭을 갈면서 들었던 생각 둘, 농부는 밭을..

우리집 이야기 2024.09.29

시원하시겠습니다.

시원하시겠습니다. 해년마다 선산 벌초는 내 몫이었다. 사촌, 팔촌이 다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피해 가지 못했다. 가끔 '도대체 왜'라는 불만이 일기도 하지만 그냥 조상님께 복 쌓는다고 생각하자고 달래가며 쭉 해왔다. 올해는 퇴직하신 형님과 함께 좀 수월(?)하게 진행했다. 언제까지 벌초를 할 수 있을까? 우리 대를 넘기면 벌초할 사람도 없을 뗀데, 선산을 정리하고 평장을 할까? 아니면 수목장? 이런저런 생각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집 이야기 2024.09.09

오늘같이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길을 걷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었다. 구름이 수상해 비가 크게 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빨리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비를 맞을 때는 어떻게든 이 비를 피해보려고 했으나 비가 옷을 적시고 온몸을 휘감아 돌기 시작하자 이내 포기하고 그냥 비를 받아들였다. 사진 속 거리의 끝에서 집까지 오늘길이 100미터쯤 될까말까 한 거리인데도 이렇게 복잡 미묘한 상황과 생각이 겹치면서 달리기를 포기하고 천둥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걸었다. 유년의 기억 속 소나기는 행복한 추억이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 소나기가 내리면 그때도 지금처럼 이리저리 비를 피해 다니다 결국 옷이 젖기 시작하면 흡사 미친놈들처럼 빗길을 뛰어도 다니고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나랑 함께 했..

우리집 이야기 2024.08.05

애야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애야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궂은 비 내리는 날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하루종일 앉아있다. 집을 잃었나 아니면 잠시 폭풍을 피해 피난을 왔나 방충망을 흔들어 보내주려다 매미가 이곳에 온 사연을 몰라 그냥 두기로 했다. 옛 선비들은 매미에게 文ㆍ淸ㆍ廉ㆍ儉ㆍ信의 다섯가지 덕(五德)이 있다고 했는데 한낱 미물에게서도 교훈을 찾으려는 지혜가 엿보인다. 이런 매미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요리법이 연구되고 있고, 이미 미국이나 동남아등에서는 식용으로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집을 찾은 매미는 시끄러운 곤충이 아닌 귀한 손님이다.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을 갓끈과 비슷하게 보아 지혜가 있을 듯하여 첫째 덕목을 문(文)으로 보았고, 나무의 수액만을 먹고 자라므로 ..

우리집 이야기 2024.07.18

이별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집이 좀 사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일이 너무 많다. 아이들 일주일치 빨래하고,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이다. 오늘 점심 요리사는 내가 맡았다. 어제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와 부추, 오이, 양파에 온갖 양념을 버무린 채소겉절이와 계란말이, 오뎅볶음... 이 정도면 진수성찬 아닌가. 오후가 되면 또 아이들이 썰물처럼 기숙사로 빠져나가 집은 적막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집에 있다고 해서 내 적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원 갔다 오면 지들 방에서 공부를 하는지 유튜브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한 집에 여러 섬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별... 이별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관계의 단절이 공간의 분리..

우리집 이야기 2024.07.07

당신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

장마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아침 일찍 텃밭을 향했다. 텃밭 가는 길 입구에서 연꽃이 나를 반긴다. 연꽃의 꽃말이 '당신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인데 참 어울리는 꽃말이다. 장마통 텃밭은 난리가 났다. 온갖 풀과 채소들이 함께 뒤섞여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다. 이 풀들도 다 소용이 있어 뿌리를 내렸을 텐데 지금 내게는 소용이 없으니 제거되는 운명이다. 이 밭의 풀들은 내 눈에는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그렇지 않은 잡초로 구분되지만 소나 말의 눈에는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다. 더 큰 세계의 눈으로 보면 모두 다 소용이 있는 피조물들이다. 다만 필요로 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오늘처럼 뿌리가 뽑히든지 아니면 뿌리를 견고히 다지든지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용이 있는 존재들이다. 다만 상황에 따..

우리집 이야기 2024.07.06

놀고 있지만 말고 아버지 산소에나 다녀오라

요새 어머님께서 전화를 부쩍 많이 하신다. 그 대신 내 안부전화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중앙당 일을 정리하고 난 뒤 어머님 걱정이 또 하나 느셨다. 노인당에서 중간보스(요즘 노인당은 85세에도 왕보스가 못된단다) 이시지만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 등쌀에 아들이 정의당에서 일한다는 말씀도 못하시고 냉가슴만 앓고 계신 분인데 그 잘난 아들이 중앙당 일을 정리했으니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겠는가! 아무리 걱정 마시라고 해도 앞에서는 그러마 하시고서 돌아서면 한숨이다. 어제는 어머님께서 광주로 호출하셨다. "놀고 있지만 말고 아버지 산소에나 다녀오라"는 말씀과 함께... 벌초할 때가 됐다는 말씀은 감추셨지만 55년을 모셨는데 그 뜻을 모르랴... 아버님 산소 시원하게 벌초해 드리고 어머니께서 저녁을 사주신 데서 따라나..

우리집 이야기 2024.06.28

오래전 서랍

창고를 청소하는데 마치 오래전 서랍에서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듯 옛 사진들이 나온다. 총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하면서 찍은 사진과 졸업사진이다. 아직 볼살이 살아있는 풋풋한 시절이다. 내 졸업사진 위에 이름을 새겨놓았던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30여 년 만에 다시보는 이름들 앞에서 옛 생각에 잠긴다. '시사행정연구회'의 회가(會歌)는 '애국의 길'이었다. 조용히 읇조리는데 아직도 그 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청춘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그 시절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우리집 이야기 20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