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아침 일찍 텃밭을 향했다.
텃밭 가는 길 입구에서 연꽃이 나를 반긴다. 연꽃의 꽃말이 '당신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인데 참 어울리는 꽃말이다.
장마통 텃밭은 난리가 났다. 온갖 풀과 채소들이 함께 뒤섞여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다. 이 풀들도 다 소용이 있어 뿌리를 내렸을 텐데 지금 내게는 소용이 없으니 제거되는 운명이다.
이 밭의 풀들은 내 눈에는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그렇지 않은 잡초로 구분되지만 소나 말의 눈에는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다. 더 큰 세계의 눈으로 보면 모두 다 소용이 있는 피조물들이다. 다만 필요로 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오늘처럼 뿌리가 뽑히든지 아니면 뿌리를 견고히 다지든지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용이 있는 존재들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소용의 가치가 변하면서 그 무개가 달라질 뿐, 지금 소용을 다 했다 해서 다음이 없거나 영원히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 때와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쓰임이 달라질 뿐이다.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 애호박, 오이, 고추등을 따서 집에 오자마자 따끈따끈한 밥에 쌈을 싸 먹는다. 밥 한 숟가락과 맵싸한 청양고추가 나에게는 오늘 하루의 소확행을 여는 가장 소용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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