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여인두 2025. 1. 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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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기에 밤새 눈이 얼마나 내렸을까 창밖을 보며 '에게 이것밖에'란 말이 절로 나온다.
대신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은 다행이다 싶다.
지방에 살다보니 귀성길 추억은 없지만 열몇 시간씩 걸려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듣고 자랐다.
다 옛날이야기다. 빵빵 뚫린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전국을 칭칭 동여 메고 있으니 그런 영웅담이 사라진 지 오래다.

목포에 터를 잡고 산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매년 명절 때 부산히 서둘러 광주 본가로 향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아버님 제사를 모셔오면서 명절도 우리 집에서 쇠기로 했다. 이제 서울과 광주에 사는 형제들이 목포로 귀성 아닌 귀성을 해야 한다. 나야 목포가 고향이나 진배없지만 그들에게는 타향일 텐데 이번 명절 귀성길이 즐겁고 설레기보다 낯선 귀성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신 여행 삼아 오라는 당부는 했다.

둘째인 우리집에서 명절을 쇠다보니 아무래도 내 일이 더 많아졌다. 아침부터 바빠진 아내의 손길에 보조를 맞추느라 진땀을 흘린다. 둘째인 내가 집안 제사와 명절을 맡기로 한 것은 삼형제 중 유일하게 내게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떠나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결정이 어디 있냐 싶지만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됐다. 다행인 것은 그 결정 과정에 아내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됐다는 사실이다.
3남 1녀의 둘째며느리로 들어와 맏며느리 역할을 자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나는 차려진 밥상에 앉아 숟가락만 들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밥상을 차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이 들어 새로운 것이 없다보니 명절 또한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래도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설날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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