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귀향

여인두 2016. 2. 27. 00:10

 

 

앙상한 겨울나무가 아직 지푸라기 옷을 벗지 못하고 나뭇가지 끝에 봄이 걸린 날, 상영날짜 만을 고대하며 기다리던 영화 귀향을 보았습니다.

14년전 강일출할머니의 나눔의 집심리치료 그림인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자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은 영화로 오랜 산고 끝에 귀하게 우리 앞에 찾아온 영화이기에 그동안 이 영화를 기다려왔던 설렘보다는 숙연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국민의 뜻으로 한두레박씩 모아 상영되기까지의 귀한 마음이 모아진 영화라 스토리의 개연성은 익숙할지라도 전개되는 화면속에서 소녀의 순백의 옷이 찟길때마다 일분군의 거친 손길을 걷어 차고 싶은 심정과 울분이 솟구쳐 올랏습니다.

 

영화는 매끈하게 잘 나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은 신파극이 아닐까 우려했었는데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준 조정래감독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영화는 볼때마다 행복감을 느낍니다. 물론 귀향이라는 영화에서 행복감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표현할 때 이 단어가 거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귀향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가 잘 나왔다는 만족감은 느꼈습니다.

 

영화 내내 드러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절한 삶을 보면서 왜 우리는 역사를 올곧게 알아야 하는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향은 말해줍니다. 영옥(영희)이 고향을 찾았을 때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영옥(영희)에게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은경의 투정에 영옥(영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는다고? 그래 찍자!” 이 간결한 한마디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었을까요! 역사는 남겨야 하는 것이니까요. 비록 그것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이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75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영화제작 펀딩(후원)에 참여했고 이 당연한 말을 듣고자 개봉 이틀만에 3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영화관에 줄을 서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나봅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가 축소 기술되고 심지어는 위안부라는 표현도 빠진 채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라고만 쓰여진다고 하니 기록되어져야하는 역사가 왜곡되는 현장을 목도하는 할머니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 우리라도 찍자!” 아마 할머니들은 지금도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지난 224일 김경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마흔네분의 할머니가 영화에서처럼 동사무소에 가서 몰상식한 직원에게 아니 역사를 잊은 우리에게 그래. 그 미친 할망구가 여기 있다~~”고 절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넋이 온다는 뜻입니다.

귀향을 보면서 섬뜩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굿판이 벌어집니다. 영옥(영희)의 귀향굿판입니다. 은경에게 정민의 혼이 들어 영옥(영희)과 정민이 반세기만에 만나면서 서로를 달래주는 해원굿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구경꾼들 사이로 한명씩 나타나는 총검을 든 일본군들... 그들의 음흉한 미소와 섬뜩한 눈빛에서 아직 이 아픈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지난해 12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협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이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했던 일부의 움직임을 보면 더욱 명약관화합니다. 아직도 이땅에 남아 총검을 들고 음흉한 미소와 섬뜩한 눈빛을 한 채 우리를 지켜보는 일본군의 정체가 누구인지 말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갈했던 단재 신채호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해야 합니다.

201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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