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녘 지리산 자락길을 따라 백무동까지 호젓한 계곡길을 물소리, 새소리를 벗 삼아 걸었다. 화차를 삶아 먹은 듯 거침없이 소리를 내다가도 졸졸졸 마치 아기의 숨소리를 흉내 내는듯한 소리가 계곡의 생김처럼 변화무쌍하다.

백무동, 무당이 많아 백무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만큼 영발이 좋은 것일까? 누군가 심산유곡에서 간절히 치성을 드리고 간 모양이다. 위치한 곳도 모양도 재각각인 돌탑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리산을 완주한 경험이 딱 두 번 있었다. 대학시절 한 번은 동아리 선배들과 또 한 번은 후배들과 야간행군도 해가면서 빨치산 이야기를 밤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30여년 동안 지금처럼 지리산 자락을 배회할 뿐 언젠가는 꼭 완주하리라는 해묵은 목표는 여지껏 엄두도 못내고 있다.

시대와 불화를 겪은 사람들의 마지막 은신처 지리산,
마한의 한 왕조가 은신을 시작한 이래 구한말 동학의 전사들과 항일의병 그리고 빨치산까지 지리산은 약자를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었다.

지리산 이름에 관한 여러가지 설중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하고자 명산을 두루 찾아 치성을 올릴 때 백두산과 금강산은 수락했으나 지리산만은 끝내 거절해 그 뜻이 다르다 하여 지리(智異)라 불렸다는 것처럼 지리산은 끝내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기개를 간직한 땅이다.

그 지리산 자락 끝머리에서 2박 3일 여름을 피해 지인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했다. 지리산을 노래하거나 이 산을 거쳐간 수많은 순교자들을 추앙하지는 않았지만 참고 견디며 부비고 살 기운을 충분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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