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SNS를 가득 채운건 바이든의 사퇴 소식도, 김건희의 꼼수 조사도 아닌 김민기 선생의 부고 소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이 가기 전 그에 대한 단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김민기
그 이름만으로도 저항이었던 문제적 인물
그러나 난 그를 몰랐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등 걸작들이 있었음에도 난 김민기를 '친구'로 처음 접했다. 전파사에서 팝송과 가요를 녹음해 주던 시절 내 카세트 테잎에 김민기의 '친구'가 녹음돼 있었다. 아마도 주인아저씨의 실수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노래 취향은 나나무스쿠리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그리고 스티브원더 정도였으니 가요가 내 태잎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은 사내가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요 무엇이 죽었소"라고 내게 묻는데 노래가 단순히 자기 위안의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던 사춘기 소년으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김민기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검색 기능도 없었고 그렇다고 못하는 공부를 작파하고 나설 용기도 없었으니 김민기라는 가수는 그냥 이 한 곡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나는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2년 뒤 고3이던 어느 날 선배들이 홈커밍데이라는 명목으로 학교를 찾아와서 '아침이슬'과 '상록수' 그리고 '광야에서'를 가르쳐주고 떠났다. 그때가 1987년 6월 항쟁 전 5월이었다. 피 끓는 청춘으로써 당장 거리로 나서지는 못하는 처지였으나 김민기라는 이름 석자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양희은이 부른 '작은 연못'에 김민기라는 이름이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조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있었다고 전해지지요"
풍자와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 음악이라는 장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오직 김민기 선생만이 해주고 떠나셨다.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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