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하정우 천만시리즈

여인두 2025. 2.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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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과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시청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모채널에서 방영한 하정우의 천만 영화 시리즈다. 그리고 두 영화 다 극장에서 본 영화들이다.

암살의 주인공은 속사포나 하와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안옥윤도 아니다 염석진이다. 제길 하필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염상진과 받침만 하나 다른 이름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염석진과 염상진을 생각했다.
연배로 따지면 염석진이 염상진의 형님뻘이다. 소설 속 염상진은 숯쟁이 아버지 밑에서 자라 민중적 삶을 체현한 인물이다. 벌교 근동의 자자한 수재였음에도 결국 민중들과 함께하다 민중들 품에서 죽었다.  
반면 영화에서는 염석진의 과거를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염석진 또한 염상진과 같은 수재형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험한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았겠는가?
다만 염상진과 달리 염석진은 공동체가 아닌 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프락치였을지라도 그는 그것이 시대정신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그가 안옥윤에 의해 처단될 때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항변한 이유 역시 당시 지식인들이 가졌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염석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당연하게도 프락치의 길이였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처단이었다.

암살에서 염석진의 8~90년대판이 나쁜놈들 전성지대에서는 최익현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는 평범한 아니 적당히 나쁜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해 동네 양아치를 거쳐 지역 거물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역시 염석진과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아닌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 오죽했으면 하정우가 연기한 악당 최현배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다만 염석진과 달리 최익현은 아들의 검사 임용으로 성공스토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천수를 누린 후 저승사자가 최현배의 목소리로 그를 부르지만 그것은 단죄가 아니라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 죽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아마도 감독이 그를 단죄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친일파와 달리 최익현과 같은 협작꾼은 당시 보편적 인간의 표상이기에 그를 단죄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영화적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배치해 현실과의 잡음을 최대한 없애 흥행의 안전판을 마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대판 염석진과 최익현은 누구일까? 아마도 윤석열 아닐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로 전국적인 거물로 우뚝 서 대권을 거머쥐었으나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염석진과 같은 프락치의 삶과 최익현과 같은 협작꾼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인간이 꼭 죽어야만 최후가 아니기에 그의 최후가 자못 궁금하다. 영화적 상상력이기는 하지만 염석진처럼 처단될까? 아니면 최익현처럼 천수를 누릴까? 이도저도 아니면 전두환처럼 처벌은 받되 떵떵거리며 천수를 누릴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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