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정월대보름

여인두 2025. 2.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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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냥 지나치는 명절이 되어버린 정월대보름이다.
어릴 적 정월대보름이면 해년마다 시골에 갔었다. 물론 내 의지가 아니라 부모님의 명에 따라 신부름 겸 시골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러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도 초등학생인 내가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시골 고향마을까지 혼자 다녀왔다는 사실이 대견하기만 하다. 지금이야 명절 때 어르신들 찾아뵈면 용돈을 두둑이 챙기는 보너스라도 있지만 그 당시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돈 구경은 하늘에서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시골에 도착하면 부모님 신부름은 싹 잊어버리고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대나무밭을 사이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뉜 동네는 기껏해야 50여 가구에 불과한 작은 산골이었다. 그런데도 내 친구들이 10여 명이나 됐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무튼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사고도 치고 하다 보면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부리나케 부모님 신부름을 완수하고 광주로 향할 때의 그 아쉬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향수로 남는다.

그 아련함에는 진짜배기 정월대보름 놀이를 못해보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깡통놀이와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어릴 적 동심을 자극했던 이 놀이들은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농촌만의 풍경이었다. 언젠가 정월대보름 밤을 보낼 수 있었을 때 봤던 달집태우기의 웅장한 불꽃과 신나게 깡통을 돌릴 때의 그 아름다운 동그란 불꽃을 잊을 수가 없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해서 뜬눈으로 밤을 세려다 스르르 잠이 들었던 기억,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동네로 뛰어나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내 더위"를 외쳤던 기억, 친구들과 돌 장난을 하다가 장독을 깨트리고 심지어는 지나가던 동네 형의 이마를 명중시켜 피를 봤던 기억, 여러 기억 중 단연 으뜸은 신나게 놀다 막차를 놓쳐 읍내까지 30리 길을 걸어걸어 나오던 기억이다. 그 밤, 그날따라 유독 구름이 많아 달빛이 사윈 어둑어둑한 길을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어쩌다 만나는 경운기는 내 갈길과 달라 더욱 허탈하기만 했다. 걷다가 무서우면 큰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다 담양읍내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해 광주로 가는 막차를 타면서 그때까지의 시름을 내려놓았다.

아침 검색을 하다 정월대보름이라는 단어에 어느덧 40여 년이 훌쩍 흘러버린 겁도 없었고 인심도 후했던 그때 그 시절이 갑자기 생각나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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