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차 시민문화제를 끝마치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만들어진 자리, 그 자리에서 모 선배가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를 낭송한다. 그동안 김원중의 노래로만 들었던 '직녀에게'가 아니었다. 단순히 통일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인줄 알았는데 가히 혁명가 수준이었다. 특히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라는 대목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오작교 마저 끊어진 상황에서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널 준비가 됐냐는 시인의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불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마치 무정부상태라도 된 듯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산불을 인간의 힘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화에 나선 고마운 분들이 있어 끝내 진화되리라 믿는다. 다행히 오늘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있어 산불 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는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 전문이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