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여인두 2023. 12. 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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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이 너무 눈부셨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흰 선 밖으로 나가지 마, 선 밖으로 나서면 지옥이야”
엄마인 사오리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마음속에 그 흰 선을 그어놓고 필사적으로 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괴물은 누구일까?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동화가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넘지 말아야 할 그 흰 선 때문에 누군가는 괴물이 되어야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스크린 안 그 누구도 괴물이 아니었다. 스크린 밖에서 괴물을 찾기 위한 수많은 눈들이 괴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오리의 눈에는 선생님인 호리가 괴물이고, 호리의 눈에는 사오리의 아들인 미나토가 괴물이고, 또 아이들의 눈에는 반 친구인 요리가 괴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었다. 엄마로서의 사오리, 선생으로서의 호리, 친구인 미나토와 요리 누구 하나 비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만든 제도, 그 제도로 운영되는 사회가 괴물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이 대사가 처음에는 당연한 것처럼 들렸다.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그러나 그 화자가 교장선생이라는 점에서 이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이유로 권력으로부터 쫓겨나는 이들도 있으니까.
호리처럼 학교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쫓겨나고, 요리처럼 그 또래가 인정하지 않는 정체성 때문에 병자 취급받으면서 왕따를 당하는 것처럼 전체의 행복을 위해 각자의 행복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가장 포용적으로 들렸던 이 말이 실은 가장 편협한 시각을 들어내는 말이었고, 이 영화가 말하는 편견의 굴레를 대변하는 말처럼 들렸다.

 

결국 미나토와 요리의 선택은 슬프게도 둘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눈부신 숲길을 뛰어가는 미나토와 요리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 먹먹함이 밀려왔다.
“우린 다시 태어난 건가?
아니, 우린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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