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일본인은 돌아가지 않았다

여인두 2025. 3. 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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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 삼일절 특집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렸다.

그들은 왜 모든 재산을 남겨놓고 떠났을까?
집사 또는 충복에게 "20년 뒤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재산을 잘 관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야반도주하듯 떠났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긴가민가했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 대다수는 일본의 가난한 농민이었고 그들이 일제의 토지 조사령 등을 통해 확보한 땅을 동양척식주식회사등과 함께 싼값에 불하받아 지주로 성장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는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패망의 충격과 안전보장이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원자폭탄이 터진 패망한 본국의 소식은 더 흉흉했을 텐데 그런 결단이 가능했을까? 그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산 기간 만해도 10년에서 최장 36년은 됐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을 한방에 날려버린 주장을 오늘 유튜브를 통해 들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교수가 일제 패망 뒤 한반도에 남은 일본 거류민이 5만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기에 호사카 유지 교수를 검색했더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제총독부는 패망 직후 일부 일본인 지주 또는 사업주들에게 돌아오지 말고 남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전국 20곳에 일본인 돌봄회를 만들어 1년 반동안 활동했다. 그 일본인 돌봄회는 일본인 지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물론 다들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겠지만 한국인처럼 말할 수 있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땅과 재산을 팔아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나가 살 수 있게 도와줬다. 실례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김모씨가 본인에게 와서 자기 아버지가 사실은 일제 때 건너온 일본인이었다고 했다는 일화까지 설명한다.

동화 같은 이야기는 동화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은 훨씬 복잡 다양하다. 5만여 명의 숫자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상당수의 지주와 사업주들 특히 일본으로 돌아간들 한반도에서 누렸던 부를 누릴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은 어떻게든지 한반도에 남았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일왕의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그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가 울려 퍼졌을 때,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면서 일왕과 일본 총리에게 사과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식민지근대화를 주장하는 뉴라이트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됐을 때 그들은 남다른 감회에 휩싸이지 안했을까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해방 80년이 됐는데도 일제잔재 청산이 안된 이유가 단지 친일파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오늘 아침 날씨만큼이나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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