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동백숲에 넋을 빼앗겨버렸다

여인두 2024. 7. 12. 09:46

동백숲에 넋을 빼앗겨버렸다.
내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새까맣게 잊고 동백이 펼쳐놓은 장관에 그만 흠뻑 빠져들었다. 7미터나 되는 거구의 동백들이 내 출입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라도 하듯 내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동백꽃이라도 피었으면 정말이지 백련사는 보지도 못하고 여기에서 시간을 다 보낼뻔했다.
지인이 몇 해 전 백련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는 말에 허풍 떨지 말라고 핀잔을 줬는데 허풍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백련사는 입구부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고 큰 절도 아니다. 대웅전을 비롯해 10여 채 내외의 불전으로 구성된 절이다. 이 절에서 800여년전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백련결사(백련사결사) 운동이 조직됐다고 하니 아마 동백숲도 그때 조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백꽃이 지는 모습(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전부 붙은 채 한 송이씩 통째로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 같기 때문이다.

백련사 대웅전을 지나는데 마침 스님께서 차 관련 교육을 하고 계셨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옛 선조들은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차를 마셨다. 그렇듯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따뜻한 차 한 잔, 소박한 밥 한 그릇을 마주할 시간적인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위무하는 시간이 아닌 일상의 연장이 되어버린 시대에 다시 '일상다반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언뜻 귀동냥으로 들었다.
쉬고 있는 나로서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제대로 잘 쉬고 있는지 생각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