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내리고
지하철을 타고
그 익숙했던 일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약속시간은 멀리 있고
장소는 가까운지라
구경삼아 국회 주변을
배회하다.
국회도서관에 전시된 한강 특별전에서
한강의 시 한 편을 읽는다.
자화상. 2000. 겨울 / 한강
초나라에 한 사나이가 살았다
서안으로 가려고 말과 마부와 마차를 샀다
길을 나서자 사람들이 말했다
이 보오,
그쪽은 서안으로 가는 길이 아니요
사나이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요?
말들은 튼튼하고 마부는 노련하오
공들여 만든 마차가 있고
여비도 넉넉하오
걱정 마시오, 나는
서안으로 갈 수 있소
세월이 흐른 뒤
저문 사막 가운데
먹을 것도 돈도 떨어지고
마부는 도망치고
말들은 죽고 더러 병들고
홀로 모래밭에 발이 묻힌
사나이가 있다
마른 목구멍에
서걱대는 모래흙,
되짚어갈 발자국들은
길 위의 바람들이 쓸어간 지 오래
집념도 오기도 투지도
어떤 치열함과 처연한
인내도
사나이를 서안에 데려다주지 못한다
초나라의 사나이,
먼눈
병든 몸으로 영원히
서안으로 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