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노적봉을 바라보는 장군의 마음을 알 것 같다.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고하도에서 106일간 머물렀다.
장군이 바라보는 노적봉은 왜구에게 군량미가 많음(그만큼 군인이 많음)을 알리려고 큰 바위 주변을 짚과 섶으로 둘러싼데서 유래했다.
장군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조선의 민중이지 종묘사직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장군처럼 대한민국 민중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
장군이 처음 목포로 들어오던 난중일기 1597년 10월 29일 내용이다.
[사경(새벽 두 시)에 첫 나팔을 불고 배를 출발했다. 목포로 향하는데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갔다가 보화도(고하도)로 옮겨 정박했다. 서북풍을 막을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적합했다. 육지에 올라 섬을 돌아보니 지형이 매우 좋아 진을 치고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아침 유달산에 올라 나라를 생각한다.
'목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덕수는 내란특검법 즉시 공포하고, 내란동조당 국민의힘 해체하라! (2) | 2024.12.24 |
---|---|
목포 제정당 공동 선언문 (0) | 2024.12.12 |
조찬모임 (1) | 2024.11.18 |
전남국립의과대학 설립시 최우선 고려사항은 의료취약성 지표이다. (1) | 2024.10.30 |
나전칠기 (0) | 202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