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두의 시시콜콜

여인두의 시시콜콜 여덟번째 '목포 정명(正名)찾기'

여인두 2016. 10. 25. 16:08

 

10월 1일 시민의 날에 대한 변경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목포시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목포 정명(正名)찻기’라는 이름으로 목포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한 용역을 목포문화원에 맡겨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금의 시민의 날은 10월 1일입니다. 이는 1897년 10월 1일을 목포 개항으로 보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한 날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스스로 목포 역사에 족쇄를 채우는 형국입니다. 이미 1439년(세종 21년) 만호진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목포는 항(港)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97년 10월 1일 근대항(통상항)으로의 개항이 고종칙령에 의해 선포됐습니다. 근대항으로의 개항 선포가 600년 목포 역사로 봤을 때 의미있는 날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개항 선포가 자주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영사 이노우에는 1895년 1월 6일부터 한 달 반 가량 서남해안 일대를 시찰하고 목포가 개항장으로 가장 합당한 곳이라고 건의를 합니다. 또한 수년전부터 일본인들이 목포에 들어와 곡창지대인 호남을 수탈할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과연 자주적 개항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시민의 날 유래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동명동 소재 송도(송도신사)에서 개항을 축하하는 행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로 볼 때 우리는 하루빨리 시민의 날을 변경하여 목포의 유구한 역사와 자주성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목포 이전에 개항을 했던 부산, 원산, 인천과 달리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이 아니고 고종의 칙령에 의한 자주적인 개항이었다는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사실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당시 정황을 고려 할 때 역사적 진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목포 개항이 목포 역사의 시작이라는 혼란을 자초하여 600년 목포역사가 묻힐 수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털고 새로운 목포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600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야 합니다. 1439년 4월 15일 설치된 만호진과 개항 그리고 목포의 눈물을...
별첨 : 최종 용역 결과 설명회를 왜 문화원에서 하지 않고 목포시가 주관해서 하는지 궁금합니다. 목포시는 시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목포시가 주관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궁색하기만 한 발언입니다. 당연히 용역을 맡은 목포문화원이 해야 할 일을 목포시가 하다보니 또 다른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