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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용산역에서 내리고 지하철을 타고 그 익숙했던 일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약속시간은 멀리 있고 장소는 가까운지라 구경삼아 국회 주변을 배회하다. 국회도서관에 전시된 한강 특별전에서 한강의 시 한 편을 읽는다. 자화상. 2000. 겨울 / 한강 초나라에 한 사나이가 살았다 서안으로 가려고 말과 마부와 마차를 샀다 길을 나서자 사람들이 말했다 이 보오, 그쪽은 서안으로 가는 길이 아니요 사나이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요? 말들은 튼튼하고 마부는 노련하오 공들여 만든 마차가 있고 여비도 넉넉하오 걱정 마시오, 나는 서안으로 갈 수 있소 세월이 흐른 뒤 저문 사막 가운데 먹을 것도 돈도 떨어지고 마부는 도망치고 말들은 죽고 더러 병들고 홀로 모래밭에 발이 묻힌 사나이가 있다 마른 목구멍에 서걱대는 모래흙, 되짚어갈 발..

옛 전남도청 현판

전남도청 현판에 총탄의 흔적이 뚜렷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대형 걸개 앞에 서있는 옛 전남도청의 현판은 역사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이 끝내 보지 못했던 그날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아니한가? 5·18민중항쟁을 폄훼하는 무리들과 함께 학살자 전두환을 칭송하는 무리들과 함께 시민들의 주검에 침을 뱉는 무리들과 함께 그래서 그들이 대통령이 되어 그들이 집권여당이 되어 그들이 국영방송의 나팔수가 되어 또 5·18과 문재학을 짓밟는 세상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러다 5·18의 진실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두렵기만하다.

세상 이야기 2024.10.17

분수

새벽같이 텃밭으로 향해 몇 가지 채소들을 심었다. 중간에 텃밭 위 주택에서 한달살이를 하시는 분과 서복현 이장님을 만나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서 이장님과의 화재는 당연히 가수 박지현이었다. 낭중지추라고 박지현의 소싯적 노래를 들어봤는데 첫 소절에 뿅 가버렸다는... 박지현 덕분에 방송출연도 하시고 잠깐 출연했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단다. 자욱한 가을 안갯속에서 혼자 밭을 일구는 농부의 모습, 그러나 현실은 서튼 텃밭지기의 호미질이 더뎌 세 시간 동안 끙끙대며 일을 마무리했다. 다들 자기 자리가 있는것 같다. 그것을 분수라 하는데 나는 내 분수에 맞는 자리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가끔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의 주변은 필경 불행해진다. 그런데 작..

우리집 이야기 2024.10.13

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났다. 당의 어려운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선거라 당원들의 관심도 미미했다. 그래도 모든 당원들에게 전화는 돌렸다. 비록 통화는 다 못했지만... 목포시당위원장 당선 어깨가 무겁다. 처음 맡는 직책이 주는 압박에 당이 처한 상황이 겹치면서 그 무게는 배가된다. 이 난국을 헤쳐나갈 묘책은 무엇일까? 현장의 대중들이라는 뻔한 정답 앞에 큰 장벽을 만난 느낌이다. 오랜 세월 되뇌었던 정답임에도 그것을 체화시켜내지 못한 죄가 바로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옆동네 (진보)당이 영광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에 뿌리내리는 정치인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쏟아부어져야 되는지 다시한번 확인한다. 우리도 과거의 해묵은 영광(?)을 버리고 정답노트가 가리키는 방향..

정의당 이야기 2024.10.12

포구에 뜬 달

포구에 뜬 달 달빛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직 본격적인 조기철이 아닌데도 조기터는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의 손은 쉴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아직 찬바람이 들지 않아 조기배는 한 척 밖에 없지만 한참 조기가 들어올 때 이곳 북항 물양장은 비릿한 생선 냄새와 일꾼들의 땀 냄새로 가득 찬다. 풍어기 때 동네 개들도 만원씩 물고 다닌다는데 올해도 그런 장관이 펼쳐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