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52

놀고 있지만 말고 아버지 산소에나 다녀오라

요새 어머님께서 전화를 부쩍 많이 하신다. 그 대신 내 안부전화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중앙당 일을 정리하고 난 뒤 어머님 걱정이 또 하나 느셨다. 노인당에서 중간보스(요즘 노인당은 85세에도 왕보스가 못된단다) 이시지만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 등쌀에 아들이 정의당에서 일한다는 말씀도 못하시고 냉가슴만 앓고 계신 분인데 그 잘난 아들이 중앙당 일을 정리했으니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겠는가! 아무리 걱정 마시라고 해도 앞에서는 그러마 하시고서 돌아서면 한숨이다. 어제는 어머님께서 광주로 호출하셨다. "놀고 있지만 말고 아버지 산소에나 다녀오라"는 말씀과 함께... 벌초할 때가 됐다는 말씀은 감추셨지만 55년을 모셨는데 그 뜻을 모르랴... 아버님 산소 시원하게 벌초해 드리고 어머니께서 저녁을 사주신 데서 따라나..

우리집 이야기 2024.06.28

오래전 서랍

창고를 청소하는데 마치 오래전 서랍에서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듯 옛 사진들이 나온다. 총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하면서 찍은 사진과 졸업사진이다. 아직 볼살이 살아있는 풋풋한 시절이다. 내 졸업사진 위에 이름을 새겨놓았던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30여 년 만에 다시보는 이름들 앞에서 옛 생각에 잠긴다. '시사행정연구회'의 회가(會歌)는 '애국의 길'이었다. 조용히 읇조리는데 아직도 그 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청춘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그 시절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우리집 이야기 2024.06.25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원명선원 앞산의 봉우리가 사라봉이라는 곳이다. 제주에서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10곳을 영주 십경이라고 부르는데 1경이 성산일출이고 2경이 사봉낙조라고 한다. 바로 그 사봉이 사라봉이다. 그런데 사라봉을 넘으면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있다. 4ㆍ3 당시인 1949년 1월 4일과 5일 양일간에 걸쳐 67가구를 모두 불태우고 학살한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육군의 전신이었던 국방경비대에 의해서 벌어진 만행은 주로 중산간마을(제주도 중산간 지대 마을)에 집중되었는데 이곳은 해안가 마을로서는 최대로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런데 스님의 설명을 듣자니 슬픔을 넘어 울화통이 터진다. 당시 1월 4일 오전 마을 근처 지서(파출소)에 돌멩이가 하나 날아들었다. 이미 돌멩이를 던진 사람은 사라졌는데도 지서 경찰들이 지..

삼성 선풍기 SF-1403W

이 선풍기 기억나시나요? 삼성 선풍기 SF-1403W 40년 됐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선풍기보다 더 깨끗하고 작동도 이상없이 잘됩니다. 바람도 지금의 떱떱한 바람이 아니라 40년전 신선한 바람이 불어 오는 것 같습니다. 원명선원 사무장님이 쓰시는 선풍기인데 사무장님의 꼼꼼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물건입니다. 호기심에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너무 오래전 제품이라서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고가의 핸드폰도 수명주기가 2~3년에 불과한데 35년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사무장님께 삼성에 연락해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요?

21코스 종달리

21코스 마지막 종달리에 도착했다. 우비와 우산을 챙겨주신 혜오스님 덕에 호우경보를 뚫고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강적을 만났으니 네번째 사진에 있는 두 사람은 이 장마통에 우산도 우비도 없이 맨몸으로 이 코스를 밟고 있다. 해상특보가 발효돼 우도로 가는 배는 멈춰있고 텅 빈 종달항 대합실은 굳게 닫혀있다. 성산 일출봉까지 가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멀찍이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종달항에서 18~21코스 종주 기념으로 먹는 라면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雨水에 젖어 憂愁에 젖었다.

월정리에서부터 세화, 하도까지의 올레길 20코스는 '우수의 길'이다. 雨水에 젖어 憂愁에 젖었다. 빗소리가 아름답다는 느낌 이해할 것이다. 누가 이 소리와 함께 이 길을 걸을까? 오직 나만의 소소한 행복이다. 한참 들길을 걷다 산딸기 무리를 발견하고 몇 알을 따먹었다. 나머지는 뒤에 올 여행자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놓았다. 이제 21코스의 첫발을 내딛는다. 여행자 센터에 물어보니 세 시간 걸린다고 한다. 기다려라 성산포...

시간에 끌려다니지 말고, 시간을 부리는 생활인이 되라

비가 내린다. 호우주의보까지 떨어졌다. 갈까? 말까? 30분을 뭉그적거리다가 비 오는 날 성산포가 보고 싶어 졌다. 그래 출발하자! 일단 출발하기로 한 이상 가방의 짐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사실 이틀간 너무 무거운 짐을 메고 다니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한 번도 쓰지 않은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녔다. 욕심을 버리니 한결 가벼워졌다. 복장도 간편하게... 어제까지의 내 모습은 부르카를 걸친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반바지에 샌들이다. 우비만 아니면 누가 봐도 동네 건달이다. 201번 시내버스를 타고 금산목까지 1시간 20분을 가야 어제 중단했던 그 자리부터 다시 시작이다. 스님과의 어제저녁 공양은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젊음의 시간이었다. 스님과 공유할 수 있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