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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에 넋을 빼앗겨버렸다

동백숲에 넋을 빼앗겨버렸다. 내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새까맣게 잊고 동백이 펼쳐놓은 장관에 그만 흠뻑 빠져들었다. 7미터나 되는 거구의 동백들이 내 출입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라도 하듯 내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동백꽃이라도 피었으면 정말이지 백련사는 보지도 못하고 여기에서 시간을 다 보낼뻔했다. 지인이 몇 해 전 백련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는 말에 허풍 떨지 말라고 핀잔을 줬는데 허풍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백련사는 입구부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고 큰 절도 아니다. 대웅전을 비롯해 10여 채 내외의 불전으로 구성된 절이다. 이 절에서 800여년전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백련결사(백련사결사) 운..

강진 남녘교회

오랜만에 강진행이다. 강진하면 다산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오-매 단풍들것네'의 영랑 생가가 떠오른다. 아! 최근에는 가우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강진읍 덕남리에 있는 남녘교회를 다녀왔다. 물론 남녘교회가 목적지가 아니라 강진에 볼 일이 있어 간 김에 남녘교회 목사님과 차 한 잔 하고 싶어 찾아갔다. 목포에서 출발할 때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주인 없는 교회를 홀로 염탐을 하고 온 느낌이다. 강진읍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 초입에 위치한 남녘교회는 아담하면서도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마당에서 예쁜 꽃들과 눈을 맞추다 반세기쯤 교회를 지켰음직한 감나무를 지나 교회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당 문을 열면 누군가가 밝게 맞이해줄 것 같았는데 교회 특유..

아리셀 공장의 화재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니다

목포 평화광장에 설치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노동자 추모 분향소'에 다녀왔다. 우리는 모두 안전한 일터와 안전한 삶터에서 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교육을 받고, 나라를 지키며, 노동을 하고, 세금을 낸다.(헌법상 국민의 4대 의무) 그런데 어째서 나라는 시민들의 이러한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는가? 노동자가 일하다 죽고, 군인이 훈련받다가 혹은 무리한 작전수행 중 황당한 죽음을 당하고, 시민들이 출근길 침수사고로 죽는 일들이 왜 자꾸 반복되는가? 단순히 안전불감증 때문만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성장제일주의가 그 원인이다. 일정한 실적 또는 성과를 내기 위해 구성원을 최대한 압박하며,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오직 성공만을 추구하는 조직문화가 사회전반에 퍼져있다 ..

세상 이야기 2024.07.11

목포시민들의 출근길 벗

목포 KBS 정윤심 아나운서님께서 정년을 맞이한다. 정 아나님의 정년을 축하(또는 위로)하기 위해 오랜만에 정의당 시의원들과 함께 모였다. 35년의 방송국 생활, 그중 25년을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목포 시민들의 출근길 벗이 돼주었던 정 아나님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앞으로의 아침시간이 허전할 것 같다. 나도 2년여를 '출발 서해안시대'의 고정 패널로 함께했기에 서울생활 중에도 가끔 찾아 들을 정도로 정이 들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작별이다. 정 아나님의 새로운 출발이 빛나기를... 그리고 혹 유튜브를 개설하시거든 꼭 게스트로 불러주시기를... 바래본다.

목포 이야기 2024.07.10

또 몽골 여행 2

비몽사몽간에 스타렉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렸다. 어제저녁 과음한 탓에 한 시간 늦게 출발한 죄(?)로 가이드가 시키는 데로 마트와 화장실 그리고 점심때 잠시 들른 현지 식당을 제외하고 차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종착점인 쳉헤르 온천 두트리조트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덕에 다행히 해 떨어지기 전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저녁 먹고 곧바로 온천장으로 향했다. 이날 저녁때 먹은 양고기가 이번 몽골 여행 중 먹은 마지막 양고기일 줄은 그때까지는 새까맣게 몰랐다. 온천수는 별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나 온천장 주변에 펼쳐진 관경은 환상이었다. 하늘에서는 매가 날고, 땅에서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야크와 양, 염소, 말이 사이좋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였다. 이 좋..

또 몽골 여행 1

한 달 사이에 또 몽골로 떠난다. 지난번 몽골 여행은 땡처리된 비행기표(왕복 99,000원)를 발견하고 갑자기 출발했다면 이번 여행은 동네 바보 형제들과 오래전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무안공항 6월 29일 21시 30분 출발, 7월 4일 05시 50 도착이다. 중년의 남자 넷이서 출발하지만, 청년들보다 더 재미있게 놀고 올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나 결과가 어떨지... 일단 잎세주 4홉드리 30병을 준비했으니 술 병이 안 나면 다행이다. 저번 여행은 울란바토르와 테를지 두 곳만 다녔는데 이번에는 그 외에 쳉헤르 온천과 미니사막이 추가됐다. 무안공항 21시 30분 출발, 울란바토르 칭기즈칸공항 0시 30분(몽골은 우리보다 한 시간 늦다) 도착 후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하룻..

최대한 거만한 자세로 걸으세요

밤이 깊어가는데도 후텁지근한 날씨는 변함이 없다. 아이들은 기숙사로 떠나고 적막해진 집을 벗어나 아내와 함께 밤마실을 나선다. 딱히 약속이 없는 밤이라 발이 이끄는 대로 걷기를 시작한다. "최대한 거만한 자세로 걸으세요" 인천의 남송한의원 원장님 말씀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산정농공단지와 노을공원 그리고 북항선착장까지 왕복 만보를 걸었다. 목포를 떠나 있었던 2년여 동안 산정농공단지에는 황톳길이 생기고 노을공원에는 스크린 로드(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음, 두 번째 사진처럼 땅바닥에 영상 쏘는 장치,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함)가 설치됐다. 북항 선착장 맨 끝 풍차에서 바라다보이는 목포대교의 야경도 볼만하다. 집 주변에 이런 산책공간이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이별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집이 좀 사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일이 너무 많다. 아이들 일주일치 빨래하고,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이다. 오늘 점심 요리사는 내가 맡았다. 어제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와 부추, 오이, 양파에 온갖 양념을 버무린 채소겉절이와 계란말이, 오뎅볶음... 이 정도면 진수성찬 아닌가. 오후가 되면 또 아이들이 썰물처럼 기숙사로 빠져나가 집은 적막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집에 있다고 해서 내 적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원 갔다 오면 지들 방에서 공부를 하는지 유튜브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한 집에 여러 섬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별... 이별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관계의 단절이 공간의 분리..

우리집 이야기 2024.07.07

당신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

장마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아침 일찍 텃밭을 향했다. 텃밭 가는 길 입구에서 연꽃이 나를 반긴다. 연꽃의 꽃말이 '당신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다'인데 참 어울리는 꽃말이다. 장마통 텃밭은 난리가 났다. 온갖 풀과 채소들이 함께 뒤섞여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다. 이 풀들도 다 소용이 있어 뿌리를 내렸을 텐데 지금 내게는 소용이 없으니 제거되는 운명이다. 이 밭의 풀들은 내 눈에는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그렇지 않은 잡초로 구분되지만 소나 말의 눈에는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다. 더 큰 세계의 눈으로 보면 모두 다 소용이 있는 피조물들이다. 다만 필요로 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오늘처럼 뿌리가 뽑히든지 아니면 뿌리를 견고히 다지든지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용이 있는 존재들이다. 다만 상황에 따..

우리집 이야기 2024.07.06

김종수 목사님 1주기에 부쳐

김종수 그는 내게 또 다른 김현삼이었습니다. 김현삼이 그랬던 것처럼 김종수도 내게 온갖 숙제를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내 인생에 아주 잠시 스쳐간 두 김목사로 인해 나는 비 오는 밤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 김현삼 목사님 당신은 죽동에 핀 꽃으로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으며 민주화 투쟁의 전사였습니다. 김종수 목사님 당신은 역사의 증언자로 차별받는 이들의 든든한 우군이었으며 평화와 통일의 꽃이었습니다. 두 목사님이 죽동교회와 산돌교회로 이어지는 30여년의 세월 속에 40대 김현삼과 60대 김종수는 제게 스승이요 어미였습니다. 김현삼 목사님을 따라 30년을 살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김종수 목사님을 따라 또 30년을 살라고 하니 너무 가혹합니다. 그러나 이 가혹한 형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별이 되신 두 목사님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