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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곧 추석인데 아직도 폭염이 쏟아지고 있다. 이 폭염 속에서 일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에어컨 밖 세상이 지옥과도 같다는 사실을... 양준혁군이 죽었다. 어린 학생들을 더위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교실밖 온도는 섭씨 35도를 웃돌고 있었고 에어컨이 고장 난 급식실은 그야말로 찜통더위였을 것이다. 그는 온열질환 증세가 나타나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런데 열사병 증상으로 쓰러진 그는 누군가에 의해 건물밖 화단으로 옮겨져 1시간 이상 방치되었다. 나무 그늘도 없는 그 화단에서 1시간여를 더위와 햇볕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량한 관리자는 그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그를 데려가라고 했단다. 양준혁군의 죽음은 명확히 중대재해다. 중..

세상 이야기 2024.09.09

시원하시겠습니다.

시원하시겠습니다. 해년마다 선산 벌초는 내 몫이었다. 사촌, 팔촌이 다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피해 가지 못했다. 가끔 '도대체 왜'라는 불만이 일기도 하지만 그냥 조상님께 복 쌓는다고 생각하자고 달래가며 쭉 해왔다. 올해는 퇴직하신 형님과 함께 좀 수월(?)하게 진행했다. 언제까지 벌초를 할 수 있을까? 우리 대를 넘기면 벌초할 사람도 없을 뗀데, 선산을 정리하고 평장을 할까? 아니면 수목장? 이런저런 생각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집 이야기 2024.09.09

아버지가 걸으시던 길 지금은 아스팔트로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한적한 시골길은 언제나 정겹다. 멀리 설산은 아침안개로 자욱하고 장날 설산을 넘어 흰 고무신을 사 오시던 날 여섯 살 아들은 날아갈 듯 기뻐하고 아버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유구한 세월이 흘러 오십객을 훌쩍 넘은 아들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길 위에 다시 섰건만 미소 가득한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제는 아버지의 미소도 가물가물 어쩌다 꿈속에서 뵙는 얼굴마저 희미할 뿐이다. * 설산은 전남 담양군 무정면과 곡성군 옥과면을 경계하는 산입니다.

주님 이 집에 누가 머무리이까?

주님 이 집에 누가 머무리이까? 마음속 진실을 말하며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을 받지 않는 이, 이 모든 것을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초승달이 십자가 끝에 걸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교회에서의 하룻밤은 생각만큼 경건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조금씩 덜어 나누듯 더불어 사는 재미를 한껏 누렸다고나 할까! 새벽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해와 달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비치지만 사람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차이를 메우고 모두가 공평하게 그 빛을 누리게 하는 것이 사회 시스템이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제대..

십우도

만덕산 오솔길에 낙엽이 쌓인다. 백광은 옷을 뚫고 살갗을 태우는데 만덕산 바람길 따라 오르다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한 인생 살다보면 여든번쯤 맞이하는 가을바람, 쉰다섯 이제 지겨울 때도 됐는데 숲속 버들가지의 이파리를 흔드는 가을바람에 아직도 설렌다. 만덕산 중턱 옥련사 범종 아래 누워 가을바람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사르르 눈을 감는다. 소를 찾아 나선 동자와 함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눈을 떠보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 우습다. 무엇이 중헌지도 모르고 욕심껏 취하려는 자들이 벌이는 한바탕 굿도 이젠 지겹기만 하다. 그들이 혀를 놀려 내뱉는 말들이 한때 그들이 가장 혐오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차라리 욕심을 숨기지 않는 편이 더 낳을뻔했다. 꿈(십우도) 속 동자는 어..

통영

통영의 야경이 슬프게 다가온다. 寒山島月明夜 [한산도월명야] 上戍樓撫大刀 [상수루무대도] 深愁時何處一 [심수시하처일] 聲羌笛更添愁 [성강적갱첨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올라 큰 칼을 어루만지며 깊은 시름에 잠겨있을 제 어디서 한 가락 피리 소리 다시 시름을 더하는고] 장군의 시름이 혼탁한 조정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향하고 있으니 달빛 사라진 통영의 야경이 슬플 수 밖에...

다시 마주한 달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여니 거실에 한 줄기 빛이 서린다. 작은방에 불이 켜졌나 하고 살펴보니 그것도 아니다. 그 빛은 보름 막 지난 달이 보내는 선물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모두가 잠든 세상을 요란 떨지 않고 조용히 밝혀주는 달은 취한 행인이 다칠세라 새벽일하는 이가 발을 헛디딜세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장애 아들이 넘어졌는데 혼자 일어나라고 모진 말을 하면서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던 어머니, 그러나 그 어머니는 눈이 오면 아들이 넘어질세라 아들 모르게 눈 쌓인 골목길을 쓸었다는 드라마(눈이 부시게)의 내용처럼 저 달도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를 어두운 곳을 찾아가는 중이다. 조용히 집을 나서 달을 따라 걷는다. 이렇게 목적없이 걷는 길이 좋다.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길..